김형관

[1-23] 김형관

오늘 ! 민주주의를 위하였던 고인의 지고지순함에 머리 숙여 애도합니다.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23
  • 성      명 :김형관
  • 출생년도 :1959-07-14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5
  • 직      업 :건축설계사무소(방위병)
  • 사망장소 :미상
  • 사망원인 :두부 총상
  • 내      용 :-뿌리 잃은 나무는 무엇으로 지탱할까?
    당시 스물이던 김형관 씨는 낮에는 건축설계 사무실에서 일했고, 저녁에는 자신의 또 하나의 신분인 군인으로 돌아가 방위병 생활을 했다. 21일 아침, 31사단에서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형관 씨는 민간인 차를 얻어 탔다. 차는 그의 집 부근이 아닌 화순으로 향하는 차였다. 때문에 김형관 씨는 중간에 백운동 철로에서 내려 집을 향해 걸었다. 그러던 중 경계근무를 서던 동료의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한복순 씨가 큰 아들이 총에 맞았다는 을 전해들은 건 다음날 점심시간 쯤 이었다. 한복순 씨는 한걸음에 아들이 죽었다는 백운동 철로 근처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전날 아들 김형관 씨가 입고 나간 신발과 찢어진 긴 옷 조각들이 뒹굴고 있었다. 한복순 씨는 아들의 운동화 한 쪽을 들고 병원을 헤매다가 기독교 병원의 영안실에 누워있는 김형관 씨를 발견했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는 시체가 김형관 씨처럼 보이지 않는 다고 생각했지만, 몸에 선명한 문신이 그가 한복순 씨의 아들 김형관 씨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증언자 : 한복순)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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