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표

[1-19] 김용표

그날의 아픔을 어찌 잊으리. 태극기 손에 들고 울분을 외치며 시내 행진하던 모습을 내 가슴에 묻은 장한 아들아 고이 잠들어라.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19
  • 성      명 :김용표
  • 출생년도 :1957-08-15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11
  • 직      업 :무직
  • 사망장소 :노동청 앞
  • 사망원인 :전견부 관통 총상
  • 내      용 :- 아들 손에서 펄럭이던 태극기
    김용표 씨는 군대에서 훈련 도중 뇌를 다쳐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됐다. 그는 집에서 쉬어야 했지만, 밖에서 자꾸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용표, 자네가 필요하네 하는 분명한 부름이었다. 김용표 씨는 얼마 전의 전우들이 왜 광주를, 자신의 동료들을 죽이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던 김용표 씨는 계엄군에게 쫓겨 대인동 친척의 가게에 숨었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총상을 당했다. 김종화 씨가 김용표 씨를 어머니 양돈실 씨에게 인계했고, 어머니는 죽은 아들의 시체를 보고 오열했다. 김용표 씨의 온몸이 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피부가 창백하게 말라 있었다. 다음날, 양돈실 씨는 김용표 씨를 김종화 씨의 트럭에 실어 고향인 담양으로 가려 했지만, 담양으로 가는 길을 바리게이트를 친 군인들이 저지하는 바람에 청옥동으로 향했다. 나씨 마을 선산에 묻도록 마을 사람들이 배려해주는 덕에 1997년 신묘역으로 이장하기 전까지, 김용표 씨는 청옥동 산에 있었다. 후에 양돈실 씨는 유족회에서 활동했지만 1995년 남편이 사망 후 유족회 활동에는 나가지 않았다. (증언자 : 양돈실)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추모글을 남겨주세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떠한 글이나 정보는 예고없이 삭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댓글등록
추모글은 1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세요.현재 0자 (최대 100자)
:
:
추모글 입력

: 아래 새로고침을 클릭해 주세요. 새로고침

  • 고인 김용표 님께 애도의 뜻을 표현합니다. 저도 그 때 시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왜 시민을 죽였는지 이해가 가질 않네요...

    최한이 2019-06-04 13:41:3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