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 너의 죽음이 조국의 자유와
민주를 위한 값진 것이었음을 우리 모두
기쁘게 생각한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18
- 성 명 :김완봉
- 출생년도 :1966-07-24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4
- 직 업 :중학생(무등중학교 3학년)
- 사망장소 :도청 앞
- 사망원인 :후경부 총상
- 내 용 :-까까머리 중학생 완봉이
김완봉 씨는 한국전쟁 중 홀로 남쪽으로 피난 온 송영도 씨가 사랑하던 아들이었다. 송영도 씨는 남쪽으로 피난 와 결혼했지만, 남편을 일찍 잃고 아들과 딸을 인생의 이유로 여기며 살고 있었다. 1980년 5월 21일, 치열한 삶에 지친 심신을 위로하기 위해 절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송영도 씨는 고생하는 시위대에게 빵이라도 먹이자며 모금하는 사람을 보게 됐다. 모금함에 천원을 넣고 돌아선 송영도 씨는 청년의 권유로 시위대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일에 참여하게 된 송영도 씨는 시위대에게 음식을 충분히 나눠준 뒤에 공수부대와 경찰에게도 음식을 나눠주고 집으로 향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송영도 씨는 아들을 찾았지만, 집안 어디에도 김완봉 씨가 보이지 않았다. 송영도 씨는 동네를 뛰어다녔고, 누군가 김완봉 씨와 비슷한 체격의 아이가 총에 맞는 걸 봤다는 말을 하는 소리를 듣게 됐다. 송영동 씨는 총격이 멎자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간 적십자 병원에서 아들 김완봉 씨를 찾았다. 어제 낮에 송영도 씨가 먹을 것을 직접 나눠준 군인들이 그녀의 아들 김완봉 씨를 쏴 죽인 것이었다. 송영도 씨는 한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거나 알아듣기 힘든 말을 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29일, 김완봉 씨를 망월동에 안치시켰다. 후에 신묘역으로 이장 됐다. (증언자 : 송영도)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