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17
- 성 명 :김영철
- 출생년도 :1956-01-02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6
- 직 업 :무직(군 전역 후 취직준비)
- 사망장소 :금남로 제일은행 앞
- 사망원인 :우전흉부 관통 총상
- 내 용 : -지금도 5월은 계속되고 있다
중고등학교 내내 성적이 우수했던 김영철 씨는 어려웠던 집안 살림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가, 3년 뒤인 1980년 5월 4일에 제대했다. 김영철 씨는 군대에 가서도 틈틈이 입사시험을 준비한 덕분에 제대 직후인 5월 17일, 광주은행의 입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고, 친구 집에 거주하면서 입사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5월 21일, 김영철 씨는 둘째 형과 광주은행에서 일하는 둘째 형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친구와 함께 광주은행 본점으로 향했다. 사실 김영철 씨가 집을 나서기 전, 계엄군의 발포 명령으로 인해 소란스러웠다. 김영철 씨는 무서웠지만, 친구가 우리는 시위하는 사람들도 아닌 데 별일 없을 거라고 하는 말에 용기 내서 도청 쪽으로 들어갔다. 총성이 잠시 멈췄고 김영철 씨는 안도했지만, 곧 다시 총성이 울렸다. 김영철 씨의 친구는 재빨리 몸을 숨겼지만 갑작스러운 총성에 당황한 김영철 씨는 몸을 숨기지 못했고, 곧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총성이 멈추자, 몸을 숨겼던 친구는 비틀거리며 걸어 나와 김영철 씨를 품에 안았다. 김영철 씨는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고, 친구는 그를 급히 전대병원으로 옮겼으나 이송 도중 숨을 거두고 말았다. 친구는 만나기로 한 둘째 형에게 김영철 씨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5월 23일 김영철 씨는 상무관으로 옮겨져 입관된 후, 망월동에 묻혔다. (증언자 : 김영춘)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