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1-16] 김선호

오월의 주홍빛 장미는 다시 향그러워도 사랑하는 영원한 나의 그대 못다 핀 꽃다운 생을 하나님 품안에서 영생을 누리소서. -로즈마리-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16
  • 성      명 :김선호
  • 출생년도 :1935-09-06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24
  • 직      업 :자영업
  • 사망장소 :충장로 무등맨션(자택)
  • 사망원인 :총상(우후 척추 관통상)
  • 내      용 :- 자식들에게는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김선호 씨는 충장로3가에서 로즈양장점을 운영하며, 슬하에 일남이녀를 두고 충장로 무등맨션 402호에 살고 있었다. 80년 5월, 무등맨션은 도청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 위험한 상태였다. 5월 21일 오후, 김선호 씨는 가족들과 함께 피신하기 위해 집에서 나오다가 청년 두 명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며 문을 차고 있는 걸 보고 그들에게 계단으로 옥상으로 가라고 말했고,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문득 청년들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던 김선호 씨는 잠깐 나갔다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가 총에 맞았다. 김선호 씨가 총에 맞는 것을 본 호텔 직원은 급히 그를 지혈했고, 그 와중에 김선호 씨가 402호라고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듣고 402로 전화를 걸어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가보라는 말을 전했다.
    강을순 씨는 운전기사와 함께 옥상으로 향했으나, 건너편 건물에서 총구를 내밀고 있는 공수부대 때문에 쉽게 남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대신 옆 건물로 가서 김선호 씨의 시신을 둘러업고 집으로 돌아 왔다. 23일, 김선호 씨를 묻긴 했으나 계엄군의 총소리에 놀란 인부들이 도망가는 바람에 봉분을 만들지 못해 3개월이 지난 뒤에 봉분을 만들었다. 후에 김선호 씨는 담양으로 이장됐다가 1997년에 신묘역으로 이장됐다. (증언자 : 강을순)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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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희원 2019-05-17 09:08:49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이라 2019-01-19 13: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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