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권

[2-52] 홍순권

폭도로 쓰러진 넋! 민주의 신 새벽으로 부활하라. -형과 누나가-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52
  • 성      명 :홍순권
  • 출생년도 :1960-01-29
  • 사망일자 :1980-05-27
  • 이장일자 :1997-05-11
  • 직      업 :재수생
  • 사망장소 :도청
  • 사망원인 :총상(우측 전 흉부 맹관 총상, 측상박부 총상)
  • 내      용 :-형님, 이제는 웃으세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북동성당에서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했던 홍순권 씨는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에 실패해 재수하고 있었다. 재수하면서도 당시 농촌의 가난과 피폐가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모순에서 오는 것이며 개발정책이라는 것이 값싼 노동력을 위해 농어촌을 희생시키고 있고, 군부와 족벌 중신의 정치체제로는 어떤 진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홍순권 씨는 알고 있었다. 전두환 등의 신군부가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켜 광주를 처참하게 죽이고 있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던 홍순권 씨는 매일 시위현장을 쫓아다니며 광주시민들에게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일시 퇴각 이후, 홍순권 씨는 도청에서 수습위원으로 일하며 숙식을 해결하다가 27일 새벽 4시, 도청 앞을 완전히 포위한 계엄군의 총격 때문에 사망했다.
    홍순백 씨는 집에서 홀로 동생을 기다렸으나 동생 홍순권 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에게서 동생이 죽었으니 망월동에 가 시신을 확인하라는 연락만이 홍순백 씨에게 닿았다. 홍순백 씨는 홍순권 씨의 시신을 망월동에서 확인한 뒤, 한동안 동생을 찾지 않다가 1981년에서야 망월동 동생의 묘를 찾아갈 수 있었다. 이후 홍순백 씨는 교통사고로 정비사업을 관두고 1985년부터 망월동에서 매점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매점 일을 하면서 망월동 묘역을 찾는 많은 사람을 보며 다녀가는 이들의 가슴 속에 무엇인가 심어질 수 있길 바란다. (증언자 : 홍순백)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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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아프로 영원히

    홍성호 2021-05-25 09: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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