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

[2-50] 이정연

아무것도 헛됨은 없어라. 우리가 사랑했던 것 괴로움 당했던 것 아무것도 헛됨은 없어라. -이정연의 일기 중에서- 이정연 역사는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전남대에 재학 중으로 항쟁의 선두에서 투쟁하시다가 5월 27일 도청사수를 위한 최후의 결전에서 장렬히 산화하셨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50
  • 성      명 :이정연
  • 출생년도 :1960-02-07
  • 사망일자 :1980-05-27
  • 이장일자 :1997-05-09
  • 직      업 :대학생(전남대 상업교육과 2학년)
  • 사망장소 :도청
  • 사망원인 :총상(좌흉부 관통, 우측두부 두정골 맹관, 좌하퇴부 맹관)
  • 내      용 :-잡초는 뽑아내야 한다
    손에 물집이 잡혀도 한마디 불평 없이 어머니의 일을 묵묵히 돕던 이정연 씨는 전남대학교 상업교육과에 재학 중이었다. 심성이 고운 만큼 정의감도 남달랐던 그는 학내 시위에 참여하다가 1980년 5월 14일 경찰에 연행된 경험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땐, 학생들에게 붙잡힌 경찰과 교환 석방 되어 별 탈 없었다. 그러나 며칠 뒤, 광주항쟁이 발발했고 과거 이력 때문에 이정연 씨가 해코지를 입을까 염려 된 부모님은 그를 산수동 이모 집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22일, 이정연 씨는 광주가 조용해 진 틈을 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며칠을 보냈다. 24일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낸 뒤, 25일 집을 나섰다. 카톨릭센터에 볼일이 있으니 한 시간 정도만 나갔다 오겠다고 말했던 이정연 씨는 그대로 도청으로 들어가 수습위원으로 일하다가 27일 새벽, 공수들의 총탄에 맞아 죽었다.
    어머니 구선악 씨는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다가, 경찰서의 연락을 받고 망월동으로 가 이정연 씨의 시신을 확인했다. 아들의 처참한 시신을 본 구선악 씨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구선악 씨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이정연 씨는 땅에 묻힌 뒤였다. 이후 구선악 씨는 유족회에서 활동하며 아들을 잃은 아픔을 달랬다. 경찰들의 감시와 미행이 숱했지만 구선악 씨는 굴하지 않고 활동하다가 1986년, 며칠을 경찰서에 구류된 채 보내기까지 했다. 그녀는 아직도 가끔 찾아오는 이정연 씨의 친구들을 보며, 먼저 떠난 이정연 씨 생각에 마음아파하고 있다. (증언자 : 구선악)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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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슬펐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손지훈 2021-05-17 11:55:21

  • 고인의 숭고한 정신이 느껴집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주 2020-05-14 10: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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