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구

[1-15] 김상구

오월 민주화 위하여 이내 한 몸 바쳐 여기에 묻히네! 한 서리 오월 언제쯤 꽃 피울까? 피 묻는 자 반성 없이 용서하여야 하는지.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15
  • 성      명 :김상구
  • 출생년도 :1958-05-23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6-14
  • 직      업 :자개공
  • 사망장소 :노동청 앞
  • 사망원인 :흉부관통상
  • 내      용 :-아들을 가슴에 묻고 투사가 된 어머니
    일찍 아버지를 여읜 김상구 씨는 나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광주에 있는 자개공장에 취직을 해 기술을 배웠다. 광주에 있는 자개농방(가구점)의 반장으로 일하며 월산동에서 시내로 나가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 차량에 탑승해 시내를 돌며 시위를 하던 김상구 씨는 친구와 함께 노동청 부근에서 도청으로 향하는 시위대의 선두에 있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광주시내 대부분 지역에서 시위대에 밀리기 시작한 계엄군의 방어선은 전남도청 부근에 집중되었다. 그 시각 도청 안에서는 시민대표와 계엄군 간의 협상이 진행되었고 시민들은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총성이 들렸다. 노동청 방향에서 도청을 향하던 시위대의 선두에 서 있던 김상구 씨는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표적이 되어 집중 사격을 받았다. 계엄군의 총탄이 김상구 씨의 가슴을 뚫었다. 그는 그 자리에 쓰려졌고, 후에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사망한 후였다.
    어머니 나점례 씨는 아들의 사망소식을 듣고 급히 광주로 향했다. 공수부대가 광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어 좁은 산길을 헤치며 광주로 향했다. 나점례 씨는 전남대병원에서 아들 김상구 씨의 시체를 확인하고 망월동에 묻었다. 후에, 나점례 씨는 죽은 아들을 위해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투쟁에 나섰다. (증언자 : 나점례)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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