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재

[2-49] 이금재

아들아! 서러워마라. 새날이 올 때까지 싸우리라. -엄마가-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49
  • 성      명 :이금재
  • 출생년도 :1951-09-09
  • 사망일자 :1980-05-27
  • 이장일자 :1997-05-11
  • 직      업 :한약방 근무
  • 사망장소 :전남여고 앞
  • 사망원인 :요부 맹관 총상
  • 내      용 :-그들이 생업에 종사하라고 했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한약방에서 일하던 이금재 씨는 한약 제조하는 것을 배워 약사로 일을 했다. 딸 하나와 임신한 아내를 둔 결혼 3년차 가장으로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던 그는 민주화운동보다는 자신의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1980년 5월 27일, 시민들은 이제 모두 밖으로 나와 생업에 종사하라는 계엄군의 가두방송을 듣고 출근을 하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았다. 계엄군들은 생업에 종사해도 된다는 방송을 하고서도 한쪽에서 이와 같은 만행을 자행한 것이다.
    어머니 김유업 씨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갔으나 이미 이금재 씨의 시신은 조카가 수습해 상무관으로 옮겨둔 후였다. 이금재 씨는 며칠 후, 망월동 묘지에 묻혔고 김유업 씨는 세 살짜리 손녀를 데려다 길렀다. 지금 이금재 씨의 딸이자, 김유업 씨의 손녀는 결혼해서 살고 있으며, 이금재 씨의 아내는 가족들의 권유로 임신하고 있던 아이를 유산시키고 광주를 떠났다. (증언자 : 김유업)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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