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수

[2-48] 이강수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48
  • 성      명 :이강수
  • 출생년도 :1961-04-08
  • 사망일자 :1980-05-27
  • 이장일자 :1997-05-09
  • 직      업 :대입 재수생
  • 사망장소 :도청
  • 사망원인 :총상(우측 흉부에서 겨드랑이 사이로 관통)
  • 내      용 :-햇살만큼이나 따가운 고통
    금호고를 중퇴하고 검정고시에 합격한 이강수 씨는 대학진학을 목료로 재수를 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1980년 5월 18일, 이강수 씨는 친한 친구가 진압봉에 맞아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고, 울분을 참지 못해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 시위하는 동안 그는 집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그리곤 농담처럼 자신은 늘 신분증을 가지고 다니니 무슨 변고를 당해도 금방 신원이 확인될 거라고 말했다. 그러던 26일 저녁 통화를 마지막으로, 이강수 씨는 행방불명 됐다. 그는 27일 새벽, 공수부대의 총격에 의해 사망했다.
    이강수 씨의 아버지 이운한 씨는 연락 두절 된 아들을 찾아 나섰지만, 보안대의 연락이 있기 전까지 이강수 씨의 생사를 알지 못했다. 보안대는 지문을 통해 이강수 씨의 시신을 확인했다고 전했고 이운한 씨는 6월 2일쯤 검찰청 8호 검사실로 갔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운한 씨는 우여곡절 끝에 경찰서에서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고 망월동으로 가, 이강수 씨의 시신을 확인했다. 오른쪽 가슴에서 겨드랑이로 총알이 관통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심하게 부패 돼 있었다. (증언자 : 이운한)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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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방탄 2021-04-10 11: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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