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선

[2-46] 류영선

파괴된 민중의 별 오월의 영웅이여. 그날은 올 것이오. 마침내 해방의 그날. 통일의 그날은 그때 가서는 일어나 받으시오. 우리들이 바치는 승리의 꽃다발을. -김 남 주-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46
  • 성      명 :류영선
  • 출생년도 :1953-05-09
  • 사망일자 :1980-05-27
  • 이장일자 :1997-05-09
  • 직      업 :대학생(전남대 화학공과 2학년 휴학중)
  • 사망장소 :도청 앞
  • 사망원인 :총상(안면부 두부 관총 총상)
  • 내      용 :-우리 형수님, 우리 형수님
    류영선 씨는 전남대 화학공학과 2학년에 다니다 휴학을 한 상태였다. 넷이나 되는 조카를 혼자 돌보는 형수에게 자신의 등록금까지 부담하게 할 수 없어 2학년 때 입대했다. 그리고 제대해 집에서 쉬면서 8월에 복학할 준비를 하던 중, 1980년 5월 17일 집에 사복경찰들이 들이닥쳐 조카 류소영 씨가 끌려갔다. 류영선 씨는 그날 이후 매일같이 밖으로 나가 시위에 참여하며 류소영 씨를 찾았다. 학생들은 공수부대의 손에 죽어갔고, 류영선 씨는 죄도 없는 시민들이 공수부대원들의 군홧발 아래 무릎 꿇는 광경을 보면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21일, 류영선 씨는 집에 전화를 걸어 담배를 살 돈이 없다며 돈을 보내달라고 했고 막내조카가 돈을 들고 류영선 씨를 만나러 왔으나 담배는 그저 핑계였다. 그저 자신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끝까지 싸울 거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형수 신애덕 씨는 시동생 류영선 씨를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동아일보에 폭도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류영선 씨의 이름을 발견하고 실종신고를 했다. 시청에서 교도소 앞까지 시체 여덟 구가 나왔으니 가보라고 해 갔으나 거기에 류영선 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6월 1일, 동부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얼굴이 심하게 망가져 있었지만, 류영선 씨가 분명했다. 이후 망월동에 안장됐으나, 5·18항쟁을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매도하기 위해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고정간첩 류낙진 씨를 구하기 위해 류영선 씨가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죄명을 씌워졌다. 신애덕 씨는 시동생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유족회에 나가 활동했으나, 활동 도중 정보과에서 유족회에 나가지 말라는 압박과 함께 큰딸이 대학에 복학하는 데 도움을 줄 테니 류영진 씨의 묘를 이장하라는 협박을 받았다. 그래서 류영진 씨를 남원에 있는 선산으로 옮기고 류소영 씨는 4년 만에 복학하고 졸업했다. 형 류낙진 씨는 출소 후, 동생의 묘를 망월동으로 바로 이장했다. (증언자 : 신애덕)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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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안타 까웠습니다 좋은곳으로 가시길 바랄게요

    손지훈 2021-05-17 11:49:33

  • 좋은곳으로 가시길 바래요

    류지안 2019-06-04 13:4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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