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현

[2-44] 오세현

1980년 5월 18일 무단정치 하의 서민생활은 심히 괴로워 민중항쟁에 참여하다 유명을 달리한 정신은 영원히 빛날 것이외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44
  • 성      명 :오세현
  • 출생년도 :1955-09-13
  • 사망일자 :1980-05-27
  • 이장일자 :1997-05-11
  • 직      업 :회사원(유한양행)
  • 사망장소 :
  • 사망원인 :좌흉부 관통 총상
  • 내      용 :-죽음으로 끝난 장밋빛 첫 발령
    오세현 씨는 1980년 3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한양행에 입사해 광주로 첫 발령을 받아 내려왔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80년 5월 27일, 직장에서 다른 사람을 대신해 숙직을 서던 오세현 씨는 건물로 계엄군이 들이닥치는 소리를 들었다. 놀란 마음에 함께 숙직을 하고 있던 직원과 건물에서 빠져나와 골목 안 가정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 베란다 장독대 사이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으나, 이미 높은 건물을 차지한 계엄군에 총탄에 의해 베란다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오세현 씨의 죽음을 가족에게 알린 건 그와 결혼을 약속한 아가씨였다. 아가씨의 아버지가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덕에 오세현 씨의 가족들은 무사히 그의 시신을 인수해서 전주로 옮길 수 있었다. 먼저 전주에 와 있던 아가씨와 오세현 씨의 가족들은 오세현 씨를 화장했고, 전주천에 뿌렸다. 1997년 5·18유족회로부터 오세현 씨의 묘지에 묻을만한 물건을 요구해왔고, 오세현 씨에 관련된 물건이 없었던 형은 아가씨에게 연락해 책과 사진 등 몇 가지 유품을 유족회로 보냈다. 육신은 전주천에 뿌려졌을 지라도, 오세현 씨의 영혼은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과 손때 묻은 유품과 함께 국립5·18 묘지에 잠들어있다. (증언자 : 오상엽)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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