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행열

[2-43] 염행열

오월의 아픔을 어찌 잊으리. 피맺힌 한을 품고 울분을 외치며 항거한 그의 모습.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리라. 편히 잠드소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43
  • 성      명 :염행열
  • 출생년도 :1963-01-02
  • 사망일자 :1980-05-27
  • 이장일자 :1997-05-13
  • 직      업 :검정고시 준비생
  • 사망장소 :도청
  • 사망원인 :복부배 총상
  • 내      용 :
    -자신의 꿈과 가족의 기대를 뒤로 하고
    전남 보성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엄행렬 씨는 어려서부터 총명했다. 그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직업교육을 시키는 교육기관인 금호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러다 대학에 진학하기 원해 학교를 그만두고 광주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1980년 5월 18일, 엄행렬 씨는 처음부터 시위에 적극 가담했다. 계엄군이 퇴각한 이후에는 시민군으로 활동했으며 머리에 띠를 두른 채 장갑차에 올라타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27일 새벽에 도청을 사수하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숨을 거뒀다.
    이 사실을 접한 어머니 김동순 씨는 당장 광주로 향했으나, 교통이 두절 된 탓에 화순까지 이웃주민의 오토바이를, 이후는 걸어서 가야 했다. 학운동에 살던 큰딸의 집에서 둘째사위와 함께 상무관으로 가 엄행렬 씨의 시신을 확인한 뒤 망월동에 묻었다. 그리고 4년 뒤에 고향에 땅을 마련해 이장했다가, 1997년 5월 13일에 다시 신묘역으로 이장했다. (증언자 : 김동순, 엄영미)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추모글을 남겨주세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떠한 글이나 정보는 예고없이 삭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댓글등록
추모글은 1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세요.현재 0자 (최대 100자)
:
:
추모글 입력

: 아래 새로고침을 클릭해 주세요. 새로고침

  • .

    댓글이없네....... 2021-03-31 11:39:10

  • 염행열 열사님께 저희 대한민국을 위해 노력해주셔셔 감사합니다.

    윤정진 2020-05-06 11:48:0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