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빈

[2-40] 서호빈

고 달성 서공 호빈의 묘 사망일 80년 5월 27일 부 서삼봉 동생 경빈 전남대 공과 2학년 재학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40
  • 성      명 :서호빈
  • 출생년도 :1960-11-05
  • 사망일자 :1980-05-27
  • 이장일자 :1997-05-22
  • 직      업 :대학생(전남대 화학공학과 2학년)
  • 사망장소 :도청
  • 사망원인 :총상(우흉부 관통, 좌우하퇴부 관통)
  • 내      용 :
    -아버지, 당신은 죄인이 아닙니다.
    전남대학교 화학공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서호빈 씨는 여수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 양동에서 하숙을 하며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1980년 5월 21일, 도청 쪽에서 총소리가 울렸고, 그가 살던 하숙집까지 완전무장한 계엄군이 쳐들어왔다. 학생들을 내놓으라는 계엄군의 횡포에, 주인집 아주머니는 서호빈 씨를 현관 옆 화장실에 밀어 넣어 숨기고 없다고 발뺌했다. 계엄군은 집안을 한번 훑어본 뒤 사라졌고, 서호빈 씨는 이렇게 숨어있어야 하는 상황에 기가 막혔다. 그날 저녁 그는 시내로 나가 계엄군의 만행을 똑똑히 목격하곤 분노했다. 시위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서호빈 씨는 도청으로가 수습위로 활동했다. 함께 하숙을 했던 친구와 상무관에 있는 시신의 입관과 분향을 도왔고, 26일 저녁엔 마지막까지 싸우기로 결심했다. 지도부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자 서호빈 씨를 내보내려 했지만 서호빈 씨는 뜻을 꺾지 않았다. 여자 친구인 노영희 씨가 찾아와 같이 돌아가자고 애원했으나, 서호빈 씨는 끝까지 도청에 남았다. 그리고 27일 새벽,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27일, 노영희 씨는 도청 안으로 들어가 서호빈 씨의 생사를 확인하던 중, 복부 관통상을 당해 사망한 서호빈 씨를 발견했다. 시신을 수습해 입관하고 상무관에 안치시킨 후, 노영희 씨는 여수로가 가족들에게 그의 죽음을 전했다. 가족들은 27일 저녁 무렵에야 광주에 도착했다. 그러나 시신을 확인할 틈도 없어, 노영희 씨를 믿고 그대로 안장했다. 장례가 끝난 뒤, 경찰들은 매일같이 서호빈 씨의 아버지에게 유족회 활동에 나가지 말 것과 서호빈 씨를 여수로 이장 시킬 것을 강요했다. 경찰들이 다른 가족들이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협박 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여수 만석리 공동묘지로 서호빈 씨를 이장시켰다. 새벽녘에 도둑처럼, 그렇게 아들을 옮겼다는 이유로 주변의 질책을 피하지 못했다. 타인에게 이해받지도,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내내 마음 아파하던 아버지는 서호빈 씨가 신묘역으로 이장되는 걸 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증언자 : 서동환)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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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홍 2019-12-11 23: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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