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만

[1-14] 김복만

당신의 젊은 죽음이 헛되지 않고 민주화 성지에 모시게 된 것을 아들 일석·준석과 함께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편히 잠드소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14
  • 성      명 :김복만
  • 출생년도 :1952-06-12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4
  • 직      업 :운전기사
  • 사망장소 :도청 앞으로 추정
  • 사망원인 :총상(좌배흉부 총상)
  • 내      용 :- 악몽 같은 세월
    1980년 5월 16일, 김복만 씨의 장모께서 돌아가셨지만 예비군 훈련 때문에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아내 강성순 씨만 처가로 갔고, 김복만 씨는 가지 못한 대신 전화를 걸어 조의를 표했다. 본래 택시 운전을 하던 김복만 씨는 현대교통에 입사하여, 19일부터 근무를 시작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5월 18일, 거리에서 골목에서, 군화에 밟히고 몽둥이에 찢겨 쓰러진 학생들을 보고 차에 실어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매일, 김복만 씨는 처가에 전화를 걸어 아내의 안부를 묻고 자신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그러던 21일, 그날 오후부터 김복만 씨의 전화가 없었다. 아내 강성순 씨는 초조한 마음으로 남편의 전화를 기다렸지만 24일, 남편의 친구와 그들이 세 들어 살던 집주인이 남편의 소식을 가지고 장성 친정집에 있는 강성순 씨를 찾았다. 남편의 소식을 들은 강성순 씨는 당장 광주로 향했다. 군인들의 통제 때문에 광주로 가는 길이 몇 곱절 더 걸렸다. 아이들의 기저귀가방까지 다 들춰낸 다음에야 광주로 보내줬다. 강성순 씨가 도착했을 때, 이미 김복만 씨는 입관이 끝난 뒤였다. 관 위에 태극기가 덮여 있어 김복만 씨의 상태 확인조차 하지 못하고 망월동에 묻었다. (증언자 : 강성순)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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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화에 밟히고 몽둥이에 찢겨 쓰러진 학생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옮긴 것 정말 본받고 싶습니다. 김복만 씨 같이 열심히 싸워주신 분들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다인 2020-05-22 20:15:24

  • 김복만씨는 참 대단하십니다 다들 자기 목숨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김복만씨는 몽둥이에 맞은 살이 찢어져 가는 학생을 버리지 않고 도와주고 참 대단하십니다 5.18 잊지 않겠습니다

    김수경 2019-05-31 09:59:15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슴아픈사연 절대잊지않겠습니다. 5.18

    김윤서 2019-05-31 09:52:54

  • 5.18 이끝난지 38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신경쓰시지마시고 대한민국을 위해 끝까지 맞서싸우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고성진 2018-05-18 13: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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