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

[2-38] 박용준

시대의 어두움을 온몸으로 맞서시다. 숭고히 떠나가신 스물다섯의 의로운 임의 생애 살아남은 자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되오리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38
  • 성      명 :박용준
  • 출생년도 :1956-07-09
  • 사망일자 :1980-05-27
  • 이장일자 :1997-05-04
  • 직      업 :YWCA신협 간사
  • 사망장소 :YWCA
  • 사망원인 :총상(안면부 관통 총상, 운두부 자창)
  • 내      용 :
    -스물세 살 외로운 님의 생애
    아주 어렸을 때 학동 영신영아원에 맡겨졌던 박용준 씨는 영아원, 고아원 등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구두닦이를 하며 숭의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YWCA 신협 사원으로 취직해 간사로 일했다. 그러던 1979년 들불야학과 인연을 맺고, 야학의 강학으로 활동하면서 소외되는 이웃을 위해 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주민운동을 펼쳤다. 그러던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이 광주에서 만행을 일삼기 시작하면서 박용준 씨를 비롯한 강학강사들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특히 박용준 씨는 들불의 강학으로 학생들, 동료 강학들과 함께 궐기대회 선전물 제작 베포를 담당하는 투사회보 팀에서 활동했다. 5월 21일부터 만들어진 <투사회보>에는 계엄군의 만행이 적혀있었으며, <투사회보>는 5월 21일부터 25일까지 2~3만부 씩 8호가 발행됐다. 25일부터는 YWCA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이름을 바꾼 <민주시민회보>를 발행하여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26일 9호를 마지막으로 <민주시민회보>는 발간이 중지됐는데, 10호를 발간하기 전에 계엄군이 도청으로 다시 진입했기 때문이다. 26일 저녁, 투사회보 팀은 신문발행을 중지하고 총을 들었다. 박용준 씨는 자신에게 몸을 피하라고 하는 동생들을 다독이며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기도하다가 27일, 계엄군의 총에 숨을 거뒀다.
    박용준 씨는 고아라는 이유로 보상금을 받지 못하다가, 1996년에 이르러서야 얼마간의 보상금이 YWCA에 전달됐다. 이 돈은 박용준 씨와 같이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꿈을 키워나가는 청소년을 위해 쓰이고 있다. (증언자 : 나명관)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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