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연

[2-31] 김종연

사랑하는 나의 아들 종연아! 너의 젊음의 희생을 못내 아쉬워하며 고통 하였다. 그러나 젊음의 희생이 귀한 열매를 맺는 불꽃이 되었노라. 편안히 쉬거라. 나의 아들 종연아.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31
  • 성      명 :김종연
  • 출생년도 :1961-01-01
  • 사망일자 :1980-05-27
  • 이장일자 :1997-05-13
  • 직      업 :고입재수생
  • 사망장소 :도청
  • 사망원인 :총상(우흉부, 좌슬관적부, 우견갑부, 골반부 관통 총상)
  • 내      용 :-다시 피는 꽃들이 마냥 부럽다
    김종연 씨는 큰형과 광주에서 함께 살며 고등학교 재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큰형이 군입대 징집명령서를 받고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장흥에 내려와 있는 사이 광주항쟁이 발생했다. 김종연 씨는 홀로 광주에서 공부하다가 집에만 있으라는 아버지의 말을 어기고 밖에 나갔다. 처음 며칠은 김밥을 싸들고 다니며 시위대를 쫓아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결국에는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다가, 27일 새벽 도청을 포위한 계엄군의 손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 김세배 씨가 김종연 씨의 사망소식을 듣고 광주로 갔을 때, 이미 김종연 씨는 입관을 마친 상태였다. 김세배 씨는 김종연 씨를 망월동에 묻고, 집에 있는 아내에게 2년 동안 그의 죽음을 숨겼다. 2년 뒤에서야 사실을 알게 된 김종연 씨의 어머니는 마음의 병을 얻어 쓰러졌고, 그쯤부터 김세배 씨는 망월동 묘역에 안장된 김종연 씨를 고향 장흥으로 옮기라는 협박을 받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시도 때도 없이 김세배 씨를 감시했고, 협박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아들의 묘를 지켰다. 그리고 1997년 5월, 성역화된 신묘역에 김종연 씨를 이장했다. 김세배 씨는 아들의 죽음이 영원토록 이 땅에 남아 민주화의 밑거름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증언자 : 김세배)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추모글을 남겨주세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떠한 글이나 정보는 예고없이 삭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댓글등록
추모글은 1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세요.현재 0자 (최대 100자)
:
:
추모글 입력

: 아래 새로고침을 클릭해 주세요.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