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철

[1-13] 김명철

세상의 온갖 풍상을 몸으로 견뎌 오신 영전에서 손 모아 비는 마음 이제는 모든 염려 놓으시고 부디 안식누리소서……. -불효자 영수·영훈 올림-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13
  • 성      명 :김명철
  • 출생년도 :1915-02-03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4
  • 직      업 :무직
  • 사망장소 :월산동 무등갱생원 앞
  • 사망원인 :좌전 두부 타박상
  • 내      용 : -그들은 백발의 노인까지 죽였다
    지순하며 엄격한 성품의 김명철 씨는 40여 년을 월산동에 살며 양동시장에서 야채를 가져다 장사를 했다. 환갑이 넘었지만 직접 생활을 꾸릴 만큼 건강했다. 1980년 5월 21일, 계엄령이 떨어지고 사태가 심각해지자 월산동에 살던 김명철 씨는 서동으로 분가한 아들 김영훈 씨 부부를 찾아가 계엄군이 젊은 사람을 헤치고 다니니 몸을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떠났다.
    다음날 오후 2시가 지나도록 김명철 씨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아들 김영훈 씨는 아버지가 가실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23일, 아버지를 찾아다니던 중 노인 한 분을 도청으로 옮기는 걸 봤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어 도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46구의 시체가 있었고, 김영훈 씨는 일일이 관을 열어 시체를 확인하던 중, 열한 번째 관에서 아버지 김명철 씨를 찾았다. 김명철 씨의 시신은 24일에 상무관으로 옮겨졌다가 29일에 합동장례식을 치른 뒤 망월동에 안치됐다. 84년 지역개발협의회를 통해 이장을 강요당했지만, 지금은 신묘역에 잠들어 있다. (증언자 : 김영훈)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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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재진 2018-05-18 12: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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