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청진

[2-24] 민청진

19세의 젊음을 민주화에 바친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24
  • 성      명 :민청진
  • 출생년도 :1961-06-05
  • 사망일자 :1980-05-24
  • 이장일자 :1997-05-05
  • 직      업 :나무판화 기능공
  • 사망장소 :전남대병원
  • 사망원인 :총상(좌두부 관통 총상)
  • 내      용 : -아들은 되살아오지 않았다
    서울에서 나무판화 기술을 익혀 광주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던 민청진 씨는 고장이 문을 열었나 알아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총에 맞았다. 같이 있던 친구들에 의해 민청진 씨는 곧바로 도청 부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진으로 잘못된 치료를 받았다. 민청진 씨가 병원에서 진료 받는 사이, 친구들이 그의 아버지에게 도청에 민청진 씨가 있다는 것을 알렸다. 아버지 민병률 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치료가 끝난 상태였다. 민청진 씨는 진통제를 먹으며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금방 삼키고는 곧바로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민병률 씨는 진통제를 더 달라고 했지만, 간호사는 병원에 진통제가 더 이상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대꾸하기만 했다.
    어쩔 수 없이 민청진 씨는 진통제 없이 새벽을 지새워야만 했다. 의사는 다음날이 돼서야 민청진 씨의 상태가 단순한 출혈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고, 민청진 씨의 아버지에게 민청진 씨를 얼른 대학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민병률 씨는 시민군에게 차를 빌려 아들 민청진 씨를 전대병원으로 옮겼고, 수술동의서에 서명했다. 의사들은 민청진 시의 머리를 엑스레이로 촬영했다. 오른쪽 머리에 유탄이 들어가 뒤통수 쪽으로 깨알만 한 파편들이 퍼지듯 박혀있었다. 결국 파편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하고 수술이 중단 됐고, 목에 호스를 끼어 산소를 공급해 줘야 하는 상황까지 닥쳤다. 그렇게 민청진 씨는 다시 소생하지 못하고 5월 24일, 열아홉 어린 나이로 숨을 거둬 망월동 묘역에 안장 됐다. (증언자 : 민병률)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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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을고치다가총상을입어병원에가서진료를받고진통제없이새벽을버티고큰병원의수술을받가결굴열아홉의나이로사망하였다다음생에는꼭편안하고별탈없이살았으면

    김명문 2021-05-17 11: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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