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용

[2-23] 김평용

우리가 헤어진 지 어느덧 17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억울함과 원망 서린 눈길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서성거리는 구나!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23
  • 성      명 :김평용
  • 출생년도 :1966-02-05
  • 사망일자 :1980-05-24
  • 이장일자 :1997-05-24
  • 직      업 :고등학생(살레시오고 2학년)
  • 사망장소 :국군통합병원
  • 사망원인 :총상, 자상 (우측늑골부, 우측상박부 자상 좌우족 관절부 관통 총상)
  • 내      용 :-풀도 땅에 씨를 남기고 떠나는데
    고등학생 치곤 덩치가 컸던 김평용 씨가 실종 된 건 1980년 5월 24일이다. 그날 김평용 씨는 영암 집에 가기 위해 자전거에 올랐다. 군인들은 없어도 차가 다니지 않아 정 안되면 걸어서라도 가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택한 것이었다. 김평용 씨는 집으로 가던 중, 송암동에 매복해 있던 군인들의 눈에 띄어 양쪽 복숭아 뼈에 총을 맞고 자전거에서 떨어져 신음했다. 군인들은 김평용 씨에게 달려들어 대검으로 등을 찔렀다. 이후에 통합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소생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고, 군은 김평용 씨의 사망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101 사격장에 암매장했다.
    이 사실을 모르는 가족들은 김평용 씨의 자취방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림으로 보냈다. 도청과 망월동, 31사단을 거쳤지만 그의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서장과 면장이 찾아와 김평용 씨가 죽었으니 도청으로 가서 확인을 해보라고 알려줬고, 가족들은 금요일 저녁과 주말을 견디고 월요일에 도청으로 달려가 그의 사진을 확인했다. 101 사격장에서 김평용 씨의 시신을 확인, 수습 한 뒤 망월동에 안장시켰으나 거짓회유에 넘어가 김평용 씨를 영암 선산으로 이장시켜야만 했다. 가족들은 다른 영령들과 김평용 씨를 나란히 두지 못해 미안해했고, 1997년 신묘역으로 그가 이장 될 때서야 죄책감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죽은 아들의 넋을 위해, 어머니 이헌례 씨는 그날의 진실들이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다. (증언자 : 이헌례)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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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편하게 살수잇도록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안소영 2017-05-31 12:06:46

  • 우리나라를 위해 민주화운동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서연 2017-05-31 11: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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