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 잠들어라.
- 아버지가 -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22
- 성 명 :전재수
- 출생년도 :1969-05-15
- 사망일자 :1980-05-24
- 이장일자 :1997-05-06
- 직 업 :초등학생(효덕초등학교 4학년)
- 사망장소 :진월동(진재부락)
- 사망원인 :총상(흉부 관통 총상, 후대퇴부 및 후하퇴부)
- 내 용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죽음
전재수 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 막 된 참이었다. 총을 든 군인아저씨들을 행진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 벅찬 목소리로 만세를 외치던, 그들이 무슨 짓을 벌이는 지 전혀 몰랐던 어린아이였다. 그런 전재수 씨가 계엄군의 총에 맞은 날은 1980년 5월 24일, 계엄군이 도청을 함락시키려는 충정작전을 위해 광주비행장으로 이동하던 날이었다. 주남마을에서 광주와 화순 간 도로를 차단하여 봉쇄작전을 수행하며 인명피해를 냈던 11특전 여단과 7특전 여단은 명령을 받고 송정리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대열 선두에서 보병학교의 교도대 병력과 오인 사격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뒤 따르던 11특전 여단이 무차별 총격을 벌이기 시작했을 때, 그때 전재수 씨도 총에 맞고 말았다. 벗겨진 고무신을 주우러 돌아섰던 전재수 씨의 허리에서 대퇴부 사이에 여섯 발 이상의 총알이 박혔고, 배와 다리 사이가 만신창이가 돼 즉사하고 말았다.
몸이 좋지 않던 아버지 전영병 씨는 아들이 죽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알아서 전재수 씨를 관에 넣고 가까운 곳에 묻어줬다. 며칠 후 시청에서 검시를 나왔을 때도 아버지는 거동조차 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이 전재수 씨의 시신과 함께 병원까지 갔고, 삼베옷을 해 입혔고, 망월동에 묻었다. 전재수 씨의 어머니는 병을 앓다가 아들을 따라 4년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고, 아버지는 불편한 몸으로 남은 자식들을 부양했다. (증언자 : 전영병)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