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1-12] 김광석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12
  • 성      명 :김광석
  • 출생년도 :1954-01-01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5
  • 직      업 :대학생(전남대법대 3학년)
  • 사망장소 :전남대병원
  • 사망원인 :좌전흉부 맹관총상 좌하박골 관통상
  • 내      용 :-너는 집안의 기둥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김광석 씨는 전남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김광석 씨는 자신에 대한 기대를 알고 있었고, 집안 식구들과 함께 살던 맏형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학생운동에 몰래 참여했다. 당시 공무원이었던 맏형은 김광석 씨에게 ‘너는 우리 집안의 기둥’이라는 말을 자주 했고, 김광석 씨는 형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전문분야 공부에도 힘썼다. 그러나 20일, 광주문화방송국이 시민군에 의해 불태워지자 김광석 씨의 초조가 극에 달했다. 시위대에게 방송국을 불태우는 건 안 된다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형에게 이야기했고, 김광석 씨의 이야기에 놀란 형은 아는 주지스님에게 동생을 보낼 요량으로 짐을 싸라고 명령했다. 김광석 씨는 형의 말에 따라 짐을 싸는 척하다가, 형이 한눈판 사이를 틈타 달아났다.
    다음날인 21일, 시민군의 저항에 전남도청 일원만 남기고 계엄군은 모두 후퇴했다. 도청 앞 금남로에는 수십만의 시민들이 모여 계엄군과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대표들은 계엄군과 협상을 시도하고, 협상 결과를 기다렸다. 계엄군은 협상 결과를 기다리던 시민군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실탄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시민군은 자신의 주변의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김광석 씨도 이 자리에 있었다. 쓰러진 사람들을 구하러 도로로 나가다가 계엄군의 총을 가슴에 맞았다. 김광석 씨는 시민들에 의해 가까운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전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절명하고 말았다. 22일, 김광석 씨를 찾아낸 형은 그의 시신을 수습해 상무관에 안치시켰다. (증언자 : 형)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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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합니다하늘에서는행복하게사세요

    김명문 2019-05-31 09: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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