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교

[2-19] 송정교

신편송 18대손 3대 독자로 태어나 교사로서 짧은 삶을 마감하다. 고인과 후손은 바라노라. 이 땅에 이 비극이 다시 없기를.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19
  • 성      명 :송정교
  • 출생년도 :1929-09-06
  • 사망일자 :1980-05-24
  • 이장일자 :1997-06-22
  • 직      업 :교사(초등학교 교감)
  • 사망장소 :국군통합병원
  • 사망원인 :북부 및 우박상 관통상, 우상박 복합골절
  • 내      용 :-딸을 살리기 위해 총탄을 몸으로 막은 아버지
    송정교 씨는 1980년 5월 영암에서 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9월 교장 승진을 앞두고, 나주 남평읍 우산리에 있는 4대째 물려받은 전통가옥에서 5남 2녀를 두고 화목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나주 남평에 살고 있던 송정교 씨에게도 들려왔다. 당시, 광주 중흥동에 딸 송유행 씨와 아들 송명근 씨가 외국에서 근무하는 남자와 결혼한 큰딸 송옥희 씨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송정교 씨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통이 두절 돼 광주로 가는 길이 쉽지 않았지만, 5월 24일 송정교 씨는 자전거를 타고 광주로 가 송명근 씨에게 큰 누나 송옥희 씨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고향으로 가라고 말했고, 자신은 송유행 씨와 함께 걸어서 나주로 향했다. 24일 오후 3시, 4시쯤 송정교 씨가 송암동에 도착하자 갑자기 군인들이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도로 양편으로 피했다. 순간, 송정교 씨는 딸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송유행 씨를 가로 막았다가 총탄에 어깨와 배가 뚫렸다.
    송유행 씨는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정교 씨는 헬기에 실려 통합병원으로 후송됐고, 송유행 씨는 다시 광주로 가 친구 집에 머물렀다. 먼저 집에 도착한 송명근 씨와 송옥희 씨는 아버지 송정교 씨의 귀가가 늦자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의 아내 임인순 씨는 다음날,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광주로 가 남편의 행방을 찾았지만 통합병원에도, 적십자 병원에도 송정교 씨는 없었다. 그러다 6월 초에야 사망 통보를 받았다. 이후, 아내 임인순 씨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7남매 모두를 훌륭하게 키웠다. 자식들 모두 결혼 시켰으며, 임인순 씨는 남편이 남기고 간 넓디넓은 전통가옥을 홀로 지키며 살고 있다. (증언자 : 임인순, 송유행)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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