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후

[2-16] 김승후

눈부신 햇살 아래 붉게 빛나는 사루비아 꽃처럼 그대 영혼 또한 우리들의 가슴에 기억되리. 이제 편히 잠드소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16
  • 성      명 :김승후
  • 출생년도 :1961-08-20
  • 사망일자 :1980-05-24
  • 이장일자 :1997-05-11
  • 직      업 :노동자
  • 사망장소 :송암동
  • 사망원인 :총상(흉부 관통상 총상, 우흉배부에서 흉부로 관통상)
  • 내      용 :-사라진 기능올림픽 금메달의 꿈
    가난 때문에 일찍 학업을 관둔 열여덟 살 김승후 씨는 직업훈련소를 거쳐 유동에 있는 공업사에서 선반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김승후 씨는 선반을 다루는 재능이 남달리 뛰어나, 전국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어머니 목에 걸어드리겠다고 굳게 결심했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항쟁의 열기가 점차 확산되고 계엄군의 학살이 도를 넘어서면서 공장은 문을 닫았다. 그래서 김승후 씨는 집에서 일을 쉬며 가족들과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24일 13시 30분경, 주남마을 송정리 비행장으로 이동하던 특전여단은 효덕초등학교 삼거리 지점에서 시민군과 마을 주민을 발견하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선두에서 총격이 발생하자 제 11특전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일제 사격을 했고, 인근 집으로 피신한 시민군을 찾아 수색하며 계속 총격을 가하던 과정에서, 자신들이 매복해 있던 인근 야산에도 총격을 가했다. 14시 50분 경, 제 11특전 여단은 교도대 매복까지 접근해서야 그들이 시민군이 아닌 교도대 병력임을 확인하고 사격을 중지했고, 이 사건이 군끼리의 충돌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공수부대는 폭도들로 인해 자기 동료들이 죽었다며 송암동 일대의 주택가를 다시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집에서 총격이 멈추길 기다리고 있던 김승후 씨와 그의 가족, 그리고 주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그중 젊은이들이 색출됐고, 공수부대는 이들에게 조사할 게 있다며 다른 사람들을 모두 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색출된 사람 중 한 사람이었던 김승후 씨는 영문도 모르고 공수부대에 끌려가, 대검에 의해 손가락을 잃은 뒤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의 시체는 하수도에 버려졌고, 가족들은 김승후 씨의 시체를 찾는 데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합동장례식 이후에 망월동에 안장됐으며, 경찰들의 협박으로 덕의동 충의 교육원 옆의 야산으로 이장 됐다가, 1997년에 신묘역으로 이장됐다. (증언자 : 김기수)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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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모합니다. 당신의 희생, 여러분의 희생이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제 진짜 편안한 잠 자세요. 그 곳에서의 삶은 더 편하기를.

    김승유 2021-05-18 23:08:40

  • 진짜 너무너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억울할 것 같고, 그의 유가족 분들도 마음에 한이 서릴것 같습니다... 유가족분들의 마음을 이렇게 나마 풀어드리고 싶습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너무나 참혹하고 비참한 현장이었지만 광주 시민분들의 민주정신은 우리의 후대까지도 길이 기억될것입니다...

    김준교 2021-05-18 22:28:55

  • 너무 슬프고 화납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이라 2019-01-19 13: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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