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걸

[2-13] 황호걸

사랑하는 나의 아들 호걸아! 힘껏 한번 불러도 보고 싶고 너의 넓은 가슴에 묻혀도 보고 싶구나. 비록 너의 청춘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너의 넋은 영원히 자자손손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으리라. 의병 대장이셨던 네 할아버지도 불의에 항거해 이 땅에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코자 했던 손자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내 주리라. 너의 희생은 이 땅의 민주화의 씨를 뿌렸느니라. 이젠 편히쉬어 고이 잠들거라.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13
  • 성      명 :황호걸
  • 출생년도 :1960-10-07
  • 사망일자 :1980-05-23
  • 이장일자 :1997-06-14
  • 직      업 :학생(방송통신고)
  • 사망장소 :지원동
  • 사망원인 :총상(복부 및 하지 총상)
  • 내      용 :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황호걸 씨는 어려운 형편에 정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기공사에 다니면서 광주일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해 못한 공부를 계속 이어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21일 늦은 밤,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던 황호걸 씨가 총 한 자루를 들고 나타났다. 그의 아버지는 다음날 총을 가져다주라고 타일렀지만, 이미 도청에서 시신을 확인하러 온 가족들을 안내해주는 일과 시신들의 몸을 닦아주던 일을 맡고 있던 황호걸 씨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넘쳐나는 시신들 때문에 관이 부족했고, 관을 구하기 위해 황호걸 씨는 몇몇 학생들과 시민군들이 작은 버스에 올라 화순으로 향했다가 매복해 있던 군인들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5월 27일에서야 황호걸 씨를 비롯한 시신들이 전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아버지 황길현 씨는 아들의 행방을 찾아 광주 곳곳을 뒤졌다. 그러나 황호걸 씨는 어디에도 없었고, 29일에서야 지산동파출소에서 전대병원 영안실에 가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황길현 씨와 가족들은 황호걸 씨의 시신을 수습해 망월동에 안장했다. 후에 황길현 씨는 신묘역으로 이장됐으며 그의 아버지 황길현 씨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위해 유족회에서 투쟁하셨다. (증언자 : 황길현)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추모글을 남겨주세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떠한 글이나 정보는 예고없이 삭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댓글등록
추모글은 1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세요.현재 0자 (최대 100자)
:
:
추모글 입력

: 아래 새로고침을 클릭해 주세요. 새로고침

  • 댓글없어서 댓글담니다... 댓글좀 달아주세요................

    댓글이없네....... 2021-03-31 11:37:4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