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길

[2-12] 한영길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12
  • 성      명 :한영길
  • 출생년도 :1950-09-07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6
  • 직      업 :노동자(화천기공사)
  • 사망장소 :미상
  • 사망원인 :총상(두개골 맹관 총상, 두정부 맹관 총상)
  • 내      용 :-오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한영길 씨는 아버지를 한국전쟁으로 잃었고, 어머니가 친정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 한영길 씨는 할머니를 어머니라 부르고, 작은아버지를 형으로, 다른 삼촌들과 형으로 부르며 자랐다. 한영길 씨는 혼자서 한글을 뗄 만큼 영민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도금기술을 배워 서울에서 근무했다. 그러다 광주로 내려와 화천기공사에서 일하며 일본으로 건너가 도금기술을 더 배우고 싶다는 꿈을 품었지만,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 꿈을 미뤄야 했다. 그러던 1980년 5월, 한영길 씨는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계엄군이 휘두른 몽둥이에 죽은 걸 보고 시위에 뛰어들게 됐다. 한영길 씨는 노동청에서 서석동으로 내려오는 트럭을 타고 있다가 삼촌 한복동 씨를 만났고, 그의 돌아오라는 권유에 오후에는 집에 들어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 뒤 실종됐다.
    저녁이 되도 돌아오지 않는 한영길 씨를 찾아 가족들이 병원이고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나 한영길 씨는 그 시각, 병원에 누워있었다. 그를 찾던 숙모가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이었다. 그래서 한참 후에야 망월동에 임자 없는 시체들의 가묘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 한영길 씨가 있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가족들은 시체를 확인한 뒤, 봉분했다. 또 젊은 나이에 죽은 한영길 씨를 위해 영혼결혼식을 치러주기도 했다. (증언자 : 한북동)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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