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철

[2-8] 장재철

보고 싶은 내 아들아! 살아생전 못다 한 일 저승에서 이루어라. 너의 웃는 모습이 늘 엄마 곁에 있단다. 편히 잠들어라. -엄마가-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8
  • 성      명 :장재철
  • 출생년도 :1957-11-02
  • 사망일자 :1980-05-23
  • 이장일자 :1997-05-05
  • 직      업 :이발사
  • 사망장소 :지원동
  • 사망원인 :총상 (배요부 관통 총상, 두부골절에 의한 뇌손상, 좌측상박부 개방 골절상)
  • 내      용 :-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한 아들의 얼굴
    공고를 졸업하자마자 생활전선에 뛰어든 장재철 씨는 1980년 5월, 벌이를 위해 외국으로 나갈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서류접수를 마치고 친구 아버지의 이발소에서 일하며 합격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광주사태가 발생했고, 장재철 씨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매일 시내를 나가 활동하다가, 계엄군이 광주에서 잠시 퇴각했을 때 수습대챙위원 의료반에 편성됐다. 5월 23일 밤 9시경, 지원동 벽돌공장에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가 매복해 있던 군인들의 총에 맞았다. 벽돌공장 근처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쓰러져 있던 장재철 씨를 발견해 가마니 위로 옮겼으나, 금방 숨을 거두고 말았다.
    집을 나선 아들 장재철 씨가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 김점례 씨는 다음날 새벽부터 그를 찾아 종합병원을 뒤지기 시작했다. 골목 하나하나도 빼먹지 않고 둘러보다가 도청에 죽은 사람을 모아놨다는 소식을 듣고 갔지만 들어갈 수 없었고, 입구에서 우연하게 장재철 씨를 발견했지만,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다 딸에게서 장재철 씨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까 도청에서 본 시체가 장재철 씨라는 확신에 다시 도청으로 달려가 그 시체 앞에 섰다. 낯익은 운동화가, 코 밑의 흉터가 장재철 씨라는 것을 확인해 줬다. 김점례 씨는 장재철 씨의 시신을 수습해 망월동에 안장했다. 1998년에 신묘역으로 이장했으며, 아들의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아주기 위해 유족회에서 활동중이다.(증언자 : 김점례)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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