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순

[2-7] 오정순

1920년 3월 25일에 태어나서 1953년 5월 3일 아버님 돌아가시고 생전에 홀로되어 오직 자식만을 위해서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살아오신 어머님! 이곳에 두 분이 묻히시다. 이제 모든 것을 다 잊으시고 편히 잠드소서. -불효자 진섭-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7
  • 성      명 :오정순
  • 출생년도 :1927-05-25
  • 사망일자 :1980-05-23
  • 이장일자 :1997-06-20
  • 직      업 :주부
  • 사망장소 :운암동 (자택 화장실)
  • 사망원인 :총상 (안면부 관통상)
  • 내      용 :-화장실로 날아든 총탄
    남편을 여읜 오정순 시는 광주 운암동 금호고등학교 부근에서 며칠 전 둘째 아들을 낳은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다. 당시 운암동은 광주로 들어서는 고속도로의 입구라 다른 지역보다 총격전이 잦았는데, 1980년 5월 23일, 그 날도 공수부대의 무차별 적인 총격이 계속 되고 있었다. 주택가도 예외가 아니라서 집 안도 안전할 수 없었다. 오정순 씨는 집안 화장실 문을 뚫고 날아들어 온 총탄에 안면부를 관통당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아들 송진석 씨는 오정순 씨의 시신을 수습해 학동에 있는 공동묘지에 안장했다가, 검시를 위해 시신을 파내 조선대병원으로 옮겼다. 검시를 마치고 나서야 오정순 씨는 망월동에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전남도청에서 일하던 외숙의 권유로 어머니 오정순 씨를 이장해 경기도 양평에 모시는 수밖에 없었다. 10여 년이 흐른 뒤, 정부에서 사망자들에 대한 보상금을 유족들에게 지급 했으나 호프만식 계산법에 의한 보상금은 뉴스를 통해 보도된 것과는 다르게 얼마 되지 않았고, 얼마 되지 않는 돈이 죽은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지 않는다. (증언자 : 송진석)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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