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대환

[2-4] 백대환

어둠이 걷히고 밝은 태양이 솟듯이 삼촌의 함성은 이 나라의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로 꽃피네. -조카 이석기·이동기-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4
  • 성      명 :백대환
  • 출생년도 :1961-05-28
  • 사망일자 :1980-05-23
  • 이장일자 :1997-06-14
  • 직      업 :대학생(송원전문대 1학년)
  • 사망장소 :지원동
  • 사망원인 :총상 (두부, 흉부, 대퇴부)
  • 내      용 :-당신 아들은 폭도요!
    공수부대에 의해 계엄사에 끌려가 한차례 몽둥이질을 당한 백대환 씨는 친구들과 황금동 여관에 숨어 있었다. 학생처럼 보이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끌고 가 몽둥이질을 하는 공수부대 때문에, 더 험한 꼴을 당할까 싶어 아침까지 숨어있기로 한 것이었다. 그는 문득, 자신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을 떠올렸고 집에 전화를 걸어 자신은 황금동에 있는 여관에 있고, 내일 아침이 밝으면 귀가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랬던 백대환 씨는 다음날 아침, 광주 제일고등학교 동창생들과 시민군이 붙여준 103호라는 소형버스를 타고 시위에 참여했다가 23일 계엄군의 총탄에 의해 사망하고 말았다.
    백대환 씨의 시신은 5월 27일, 광주항쟁이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전남대 병원으로 옮겨질 수 있었으나 시체의 부패가 심해 그를 찾는 가족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백대환 씨의 시신은 광주경찰서 추삼득 경장을 찾아갔다가 찾게 됐으며, 이미 망월동에 안치된 후였다. 검증7호라고 적힌 푯말을 보면서 가족들은 오열했고, 경찰은 백대환 씨가 폭도라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어머니 박순례 씨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아들의 잃어버린 명예를 찾아주기 위해 유족회를 조직해 활동했으며, 1997년 6월 14일에 성역화된 신묘역으로 백대환 씨를 이장시켰다. (증언자 : 박순례)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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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가신 이유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않 으셨지마 저희는 있지않겟습니다

    성현태 2021-05-17 14: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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