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기

[2-1] 김흥기

5월 그 청청한 햇살만큼이나 저희들 가슴에 간절한 그리움으로 살아 계시는 아버님 당신은 평화의 고향에 잠들어 계십니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1
  • 성      명 :김흥기
  • 출생년도 :1920-01-02
  • 사망일자 :1980-05-23
  • 이장일자 :1999-04-05
  • 직      업 :자영업(한약방)
  • 사망장소 :미상
  • 사망원인 :차량사고(두개골 함몰)
  • 내      용 :-20년의 그리움
    6남매의 아버지이자, 김화단 씨의 남편인 김흥기 씨는 대인동에서 친구와 함께 한약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23일, 장가간 장남이 아내와 함께 손자를 데리고 본가에 내려왔었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손자를 자전거 앞에 태우고 돌아다닐 만큼 손자를 좋아했던 김흥기 씨가, 늘 손자가 보고 싶다고 해서 아들 내외가 찾아왔던 거였다. 손자도 손자였지만, 김흥기 씨는 난리 통에 며칠 비워둔 약방이 신경 쓰여 손자를 떼어놓고 약방으로 갔다. 그러다 그만 차에 치여 죽고 말았다.
    저녁 9시가 지났지만 ,김흥기 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침이 밝자마자 가족들은 그를 찾아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대병원 영안실에서 김흥기 씨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족들은 그의 시신을 수습해, 고향 장흥 선산에 묻었다. 김흥기 씨가 장손이었던 터라 집안 어른들이 고인을 망월동 묘역에 안장하는 것을 반대하다. 그러던 1999년 4월 5일, 드디어 김흥기 씨는 망월동 자신의 자리로 올 수 있었다. 김흥기 씨의 아내 김화단 씨는 6남매 중 출가하지 않은 3남매를 위해 헌신했다. 이제는 모두 시집 장가를 가서 분가해 사는 자식들을 볼 때마다 김화단 씨의 마음이 저릿하다. (증언자 : 곽희순)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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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모합니다

    송채민 2021-05-18 12:39:54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이라 2019-05-18 08: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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