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례

[1-100] 김춘례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100
  • 성      명 :김춘례
  • 출생년도 :1962-03-07
  • 사망일자 :1980-05-23
  • 이장일자 :1997-05-16
  • 직      업 :노동자(일신방직)
  • 사망장소 :지원동
  • 사망원인 :총상(흉부 전신 다발성 총상)
  • 내      용 :-짧은 생, 긴 한
    예닐곱에 아버지를 잃은 김춘례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에서 집안일을 도맡아서 하고, 오빠들의 밥이며 빨래까지 하면서 지내다가 돈을 벌기 위해 죽기 반년 전부터 일신방직에 취직했다. 1980년 5월, 일신방직이 문을 닫았고 갈 곳이 없던 동료 고영자 씨를 김춘례 씨가 자신의 자취방에 머물게 해줬다. 그러던 23일, 할아버지의 제사를 치르기 위해 화순에 가야 했던 김춘례 씨는 고영자 씨와 함께 시민군의 소형버스를 얻어 타게 됐다. 버스가 지원동 주남마을을 지날 무렵,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매복해 있던 공수부대였다. 그들은 달리는 차를 향해 마구 총을 쐈고, 김춘례 씨는 공수부대의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사고가 나고 4, 5일쯤 화순으로 나가던 시민군 버스가 주남마을에서 총격을 받아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김귀남 씨는, 죽은 사람 중 일신방직에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귀남 씨의 처제 둘도 일신방직에 다니고 있었는데, 문득 사돈처녀인 김춘례 씨도 그곳에 다닌 다는 걸 깨닫고 현장에 갔다가 그곳에서 김춘례 씨의 시체를 발견했다. 김귀남 씨는 집에 김춘례 씨의 사망 소식을 알린 뒤, 다시 현장에 갔으나 시체는 이미 전대병원으로 옮겨진 뒤였다. 전대병원에서 김춘례 씨의 시체를 수습한 가족들은 그녀를 망월동으로 옮겨 장례를 치러준 뒤에 안장했다. 김춘례 씨의 죽음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형제들은 김춘례 씨의 죽음을 잊지 못해 유족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증언자 : 김이두, 김귀남)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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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합니다ㅠㅠ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방탄 2021-06-03 17:30:41

  • 18세에 돌아가시다니 참 안타까워요..그래도 기억하고 잊지않을께요.

    최윤호 2019-06-04 12:07:20

  • 김춘례씨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버스에서 죽음을 당하셨네요.... 김춘례씨의 죽음을 안 가족들은 얼마나 슬파까요..... 시체를 정리하고,,,,, 김춘례씨는 5.18을 빛낸 분입니다, 사랑하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김수경 2019-05-31 09: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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