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2-27] 김동수

이 땅의 밑거름이 되고자 스스로를 불사른 꽃다운 혼 여기 고이 잠들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2묘역
  • 묘역번호 :2-27
  • 성      명 :김동수
  • 출생년도 :1958-07-02
  • 사망일자 :1980-05-27
  • 이장일자 :1997-05-06
  • 직      업 :대학생(조선대 전자공학과 3학년)
  • 사망장소 :도청
  • 사망원인 :총상(좌측 경부 맹관총상 경추 골절상)
  • 내      용 :-아버지가 찾아준 ‘열사’라는 이름
    4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동수 씨는 부모님 속 썩이는 일 없이 열심히 공부해 조선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생 불교연합 지부장을 맡기도 했고, 데모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아버지 김영석 씨는 아들이 바른 행동을 하고 다니는 것을 믿었기에 말리지 않았고, 김동수 씨도 아버지의 믿음을 알았기에 늘 책임감 있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0년 5월, 조선대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던 김동수 씨는 고조할아버지의 묘지 이장 문제로 고향인 장성에 머물고 있다가 17일에 도청 앞 점등식에서 사회를 맡아 행사를 진행하고 다음날 18일 오전에 연합회 일로 목포에 내려갔다. 그러다 광주에 계엄군이 주둔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김동수 씨는 21일에 시민군의 차에 올라타 광주를 향했으나 효천역 인근 야산에 군인들이 매복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하룻밤을 효천에서 보낸 뒤 도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27일 새벽, 도청을 지키던 김동수 씨는 계엄군의 총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김영석 씨는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렸다. 언젠가 오겠거니, 하고 아들을 기다리던 도중 집안 아저씨뻘 되는 김용대 씨에게서 김동수 씨가 죽어 망월동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향했다. 망월동에 도착해서 김동수 씨의 소지품을 건네받은 김영석 씨는 묘를 파헤치려는 사람들을 말리고, 죽은 아들이 편안히 잠들길 바랐으나 김동수 씨에게 폭도라는 오명이 씌었다는 걸 알게 됐다. 김영석 씨는 폭도라는 오명을 쓰고 잠든 아들을 위해 1980년대 후반, 유족회에 합류해 활동했다. 몇 개월이나 고생하고 농성하고 시위에 쫓아다녔고, 결국 김영석 씨는 김동수 씨에게 열사라는 호칭을 되찾아줬다. (증언자 : 김영석)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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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석지원 2023-05-25 16: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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