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

[1-1] 김경철

엄마와 못다 한 정에 울고 있을 나의 아들아! 한보다 더 짙게 새겨진 그리움을 뉘게 말할 소냐! 내 생이 끝나는 그날. 자랑스러운 네 모습 볼 수 있을 날 기다린다. -에미가- 아빠! 늘 어디서든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은 있지만 가슴 저미게 뵙고 싶을 때가 많아요. 단 한번이라도 아빠 얼굴보고 아빠를 불러보고 싶은 이 소망 아실런지. -딸 혜정이가-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1
  • 성      명 :김경철
  • 출생년도 :1952-08-11
  • 사망일자 :1980-05-19
  • 이장일자 :
  • 직      업 :제화공(청각장애인)
  • 사망장소 :적십자병원
  • 사망원인 :후두부 타박상
  • 내      용 :- 이제는 에미를 용서해다오
    어려서 뇌막염을 앓아 청각을 잃은 김경철 씨는 제화기술을 익혀 서울에서 양화점 일을 하다가 광주로 내려와 같은 일을 했다.
    스물여덟 살 되는 해에 결혼을 해서 딸 김혜정 씨를 낳았다. 80년 5월 18일 백일잔치 후 가족모임을 가졌는데, 김경철 씨는 가족모임에 참여한 처남을 배웅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금남로에서 친구들을 만나 점심식사를 하게 됐다. 김경철 씨와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공수부대원을 보게 됐는데, 공수부대원들은 보이는 대로 매질을 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도망쳤으나, 듣질 못해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던 김경철 씨는 달아나지 못했고, 영문도 모른 채 후두부 등에 매질을 당했다. 김경철 씨는 신분증을 보여주며 자신이 청각장애인임을 밝혔음에도 그들은 그가 자신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려고 벙어리 흉내를 낸다며 심하게 구타했다. 김경철 씨가 쓰러지자 공수부대원들은 그를 적십자병원으로 옮겼으나, 옮기는 차량 속에서도 말을 하라고 협박하며 매질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는 병원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군인들은 가족들의 동의 없이 101사격장에 암매장했으나, 후에 망월동 국립 5·18묘지로 이장 됐다. (증언자 : 임근단)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이제는 에미를 용서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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