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자

[1-96] 고영자

이러진 그 옛날이 하도 그리워 무심히 저녁 하늘 쳐다봅니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96
  • 성      명 :고영자
  • 출생년도 :1957-11-17
  • 사망일자 :1980-05-23
  • 이장일자 :1997-05-22
  • 직      업 :노동자
  • 사망장소 :지원동
  • 사망원인 :총상(전흉부 다발성 총상)
  • 내      용 :-처참히 찢겨진 딸의 몸
    고영자 씨는 화순탄광에서 기계를 봐주는 일을 생업으로 근근이 살림을 꾸려가며 아버지와 함께 6남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광주로 올라와 일신방직에 취직한 고영자 씨는 회사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내려가 잠만 자곤 했다. 그러던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의 살인적인 시위진압에 광주는 술렁였고 회사는 잠시 문을 닫았다. 교통편마저 끊겨, 그녀는 회사동료인 김춘례 씨의 자취방에서 5일을 묶었다가 23일, 김춘례 씨를 따라 화순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고영자 씨는 광주에서 군인들이 다 빠져나가, 이제는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으나 매복해 있던 공수부대의 총에 맞아 죽었다.
    딸이 지원동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연락을 받은 아버지 고재련 씨는 단숨에 현장으로 달려갔으나 고영자 씨의 시체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그러다 전대병원에서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고 그곳에서 입관 시킨 뒤, 망월동에 안장했다. 후에 읍사무소의 꼬임에 넘어가 고영자 씨를 망월동에서 지원동 공동묘지로 옮겼다가, 이장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깨닫고 신묘역으로 다시 이장했다. 그리고 1983년 고영자 씨는 1-95 구역, 옆에 안장된 김윤수 씨와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증언자 : 고재련)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처참히 찢겨진 딸의 몸

추모글을 남겨주세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떠한 글이나 정보는 예고없이 삭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댓글등록
추모글은 1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세요.현재 0자 (최대 100자)
:
:
추모글 입력

: 아래 새로고침을 클릭해 주세요. 새로고침

12